ASML의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제기, 반도체 장비 시장의 불확실성 커져

EUV 수요 둔화와 고객사 투자 지연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며 실적에 부담 전망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제조사 ASML이 내년부터 매출 성장세가 둔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면서 전 세계 투자자와 반도체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영국계 금융기관인 바클레이스 캐피탈은 ASML의 향후 매출 성장률에 대한 우려를 담은 보고서를 발표하며, 투자 의견을 기존 ‘비중확대’에서 ‘비중유지’로 하향 조정하였다. 이 보고서에서 바클레이스는 특히 2026년 ASML의 매출 증가율이 단 1%에 불과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성장 둔화 전망은 ASML의 핵심 제품인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에 대한 수요 감소 가능성과 직결된다. EUV 노광 장비는 첨단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고성능 장비로, ASML이 세계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분야이다. 그러나 바클레이스는 최근 들어 ASML의 수주 잔고가 3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으며, 이는 2026년까지 계획한 매출을 달성하기에는 수주 규모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바클레이스의 평가에 따르면 현재 수주 추세를 감안할 때, ASML은 2026년까지 목표 매출을 실현하기 위해 최소 두 배 이상의 수주를 추가로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ASML의 성장 전망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또 다른 요인은 주요 고객사들의 설비 투자 지연이다. 삼성전자, 인텔 등 글로벌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당초 계획보다 보수적으로 투자 일정을 조정하면서 고가 장비 수요가 회복되지 않고 있다. 이는 최근 몇 년간 이어진 글로벌 경기 둔화와 반도체 공급 과잉 현상에 따른 것으로, 바클레이스는 본격적인 투자 재개 시점을 2027년 이후로 보고 있다. 이로 인해 ASML의 매출 회복 시기도 예상보다 늦춰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ASML이 개발 중인 차세대 기술인 고개구수치(High-NA) EUV 장비의 상용화 일정도 예상보다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 해당 장비는 기존 EUV 장비보다 훨씬 더 미세한 회로 구현이 가능해 차세대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기술로 꼽힌다. 그러나 바클레이스는 이 장비가 실제 양산 공정에 적용되기 시작하는 시점을 2028년으로 예측했다. 이는 현재 고객사들이 기존 EUV 장비만으로도 기술 요구사항을 충족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이러한 전망은 단기적으로 고개구 EUV 장비에 대한 시장 기대감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ASML의 주가도 이와 같은 비관적인 전망에 영향을 받고 있다.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ASML의 주가는 0.5% 하락한 642.90유로를 기록했으며, 바클레이스는 기존의 목표 주가 770유로를 650유로로 하향 조정했다. 이는 단기간 내 수주 확대와 고객사들의 투자 확대가 어려울 수 있다는 판단이 반영된 것이다. 기업의 수익성과 성장성에 대한 시장의 기대치가 조정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ASML은 지난 2025년 1분기 실적 발표에서 77억 유로의 매출과 24억 유로의 순이익을 기록하며 시장 예상을 상회하는 성과를 보였다. 그러나 신규 수주는 전 분기 대비 감소한 39억 유로에 그쳤다. 이는 미국의 수출 규제, 중국 시장의 수요 둔화, 그리고 전 세계적인 반도체 산업의 투자 위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특히 미국의 규제로 인해 ASML은 일부 고성능 장비의 중국 수출이 제한되었고, 이로 인해 매출 다변화에도 일정 부분 제약을 받고 있다.
바클레이스의 이번 보고서는 ASML에 대한 지나치게 낙관적인 기대보다는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향후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회복 속도, 미국과 중국 간 기술 규제 이슈, 그리고 고객사들의 설비 투자 시점 등이 모두 ASML의 매출과 수익성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특히 수주 증가와 함께 기술 전환이 어떤 속도로 이뤄질지가 중장기적인 성장 가능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ASML은 반도체 제조 핵심 기술인 EUV 장비를 통해 글로벌 기술 리더십을 유지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기술 경쟁뿐 아니라 고객사의 전략, 정책 환경 등 외부 변수에도 보다 유연하고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투자자와 업계 모두가 ASML의 수주 동향과 고객사들의 설비 투자 계획을 예의주시하는 이유다. 앞으로의 매출 추이는 이러한 다양한 요소가 맞물려 결정될 것이며, ASML의 대응 전략이 실적의 향방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